인생에 대하여 논하다.

*우리들의 사상에 있어 위대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는 것이다. 후회를 줄이기 위해선 자신만의 사상을 키워야 한다.
현재 들어와 과학과 산업 급 발달로 물질만능 개인주의 경제학으로 사상이 썩어가고 있다. 자연의 이치에서 철학과 사상은 사라지고 오로지 경제학으로 다듬어진 물질만능 사상에 중독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한 번쯤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 진솔한 사상보다 순간적 쾌락만을 좇고 있지는 않는지를 말이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자아의 발달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물질만능은 순간적인 쾌락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뿐이다. 물질은 우리들의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뿐, 정신적으로 커다란 행복을 안겨주지 못한다. 물질에 중독되면 언제나 물질에 갈구하게 되면서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너무 어린 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자식에게 지옥으로 밀어 넣는 행위와 같다. 현재 자살, 살인을 살펴봐라. 경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협동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물질만능에 빠져드는 것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쳐서 초등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물질만능에 집착하게 만들 뿐이지 아니한가? 초등학생들의 꿈이 무엇인지 아는 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그래서 유튜버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미래의 일꾼, 인류를 이어가야할 아이들의 꿈이 단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아이들의 꿈을 좀 먹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 번 천천히 분석해봐야 한다. 경제학이다. 초등학생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린 나이에 경제를 배우게 될 때, 돈을 위해 어떻게 변할까란 생각을 해봤는가? 갑질이 왜 만들어졌을까? , 갑질에서도 왜 당하고 반항을 하지 못하는 걸까? 이 모든 것이 그 잘난 경제학의 영향이다. 갑질을 당해도 참고 이겨냈을 때 그만한 돈을 주기 때문이다. 경제물질만능주의 영향 때문이다. 그처럼 어린아이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물질만능주의를 학교에서 주입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은 악마의 학이다. 그런데 노벨상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악마의 학에다가 세계 최고의 상을 주다니.... 경제로 인하여 국가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그로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느낀다. 경제 돈이 최고라고 아이들에게 주입시킬 때 절친을 살해하게 만든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다. 20대 절친은 보험을 서로 수취인으로 하고 보험을 들고 보험을 타기 위해서 절친을 살해한 사건이다. 또한, 보험을 위해 어린 아내와 일본 여행을 가서 일본에서 살해한 사건 등등... 이모든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너무 일찍 경제학을 노출하는데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그리고 생활고, 묻지마 범죄, 자살, 갑질 등등..
경제학은 부유층과 빈곤충이란 계급사회를 만들어내고, 그로인하여 소외감을 이기지 못하고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도 경제의 너무 일찍 노출되다보니 돈을 승배하는데서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고, 빈곤해도 천국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사상이다. 반대로 경제학은 물질만능,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돈이 없으면 지옥이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경제학의 일찍 노출될 경우, 돈을 위해 양심 따위는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게 지금 사회는 경제학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절대 유토피아 문이 열릴 수가 없으며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다.
사실 8,90년대만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 당시엔 주변 90%정도가 못 먹고 못살던 시절이다. 그래도 그 당시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훨씬 잘 먹고 풍족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불행하다. 원인은 경제 노출로 인한 비교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원한다면 경제노출을 최소화해야 하며, 사상을 익혀나가야 한다. 사상은 자신의 생각이다. 돈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다. 그러나 사상이 없이는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수 없다. 현재 지옥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물질만능에 자신의 사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현대인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없다. 경제학으로 자신의 삶을 경쟁시킬 뿐이다. 여유시간을 사용할 줄도 모른다. 스마트 게임, 스마트에 빠져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 현재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자신이 돈을 신봉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남들이 그러니까. 주변 분위기에 따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논리다.
우리들이 과도하게 경제에 노출 되는 순간 흐르는 강물위에 썩어가는 낙엽이 된다. 썩어가는 낙엽은 절대 바다에 도달하기 전 강물 한 구석에 처박혀버린다. 그렇듯 죽음 앞에서 부, 명예, 권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경제학을 신봉하는 자신은 과연 부, 명에,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아까워서 눈을 제대로 감을 수나 있겠는가? 그러므로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현재 자신의 현재 삶을 천천히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잠시 자연으로 나가서 삶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 휴식이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도, 건강도,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정신이다. 악마와 천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정신이다. 그렇듯 천국과 지옥을 만드는 것은 경제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에서 달라진다. 하루에 한 끼니만 먹고, 옷도 단벌일지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만족할 수 있지만, 하루에 여러 끼니를 먹고, 옷도 천벌이나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는 언제나 탐욕에 눈이 뒤집혀 있게 마련이다. , 지옥에서 살게 된다.
 
사과 10, 딸기15, 앵두10
20-10=10
 
 
마인드컨트롤이라면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외로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단지 자신을 믿는 마음이 강할 때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현재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신앙도, 종교도 물질 경제도 아닌 바로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환각일 뿐이다. 현재 행복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를 줄 알아야 한다. 이게 바로 마인드컨트롤이다.
 
마인드컨트롤, 플라시보 효과, 종교, , 민속신앙, 등 모든 기적은 하나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강한 믿음에서 발생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생각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파장이다. 가끔 우주의 기운이 어쩌고저쩌고 한다. 그것은 어떤(종교적) 목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3소설일 뿐이.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런 3류 소설에 빠져든다. 왜 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럼 왜 사람들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깊이 믿지 못하는 걸까?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에 대해서 모르고, 삶이란 불확실성 시간이 존재함에서 만들어진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파고 들어온 게 신앙이다. 죽음이란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신앙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들 인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이렇게 설명하면 재미있을 듯하다. 1+1=2. 애디슨처럼 찰흙+찰흙=1도 성립한다. 1+1은 팽창이기 때문이다. 기본 질량이 합쳐져 부피가 늘어나므로 1+1=1이 성립할 수도 있다. 또한, 절대적인 1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0~1사이는 무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1도 완벽하게 모른다. 단지, 학교에서 학자들이 정리한 것을 기본으로 외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외우고 있는 게 정답으로 굳게 믿는데서 정답이 되는 것이다. 마인드컨트롤은 자신의 강한 믿음이다.
이렇듯 우리들은 모르는 데서 불안감이 상승하게 되며 그 불안은 현재 자신의 생각을 잠식해버리게 된다. 더 쉽게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군대를 가야한다. 그런데 군대에 대해서 경험이 없으며, 보안이란 이름아래 정확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생판 모르는 남들과 생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군대로 들어갔을 때 군대도 별 것 없다. 가끔 꼴통들이 몇 명이 존재해서 군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적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학교, 군대, 직장에서 꼴통들을 봐라. 그들은 상대가 위축되어 반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신이 나서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꼴통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장악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더욱 믿고 강하게 대응할 때 그들은 당신을 쉽게 얕잡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 당신의 시간은 행복으로 조금 더 채워나갈 수 있게 된다. 이게 마인드컨트롤의 힘이다. 생각의 힘이다. 생각의 힘은 자신의 몸과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신앙을 믿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믿는 것이 좋다. 의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신앙을 관리하는 자들 그들 역시 탐욕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인간의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주의 기운이라...
우주란 대체 무엇일까란 물음을 스스로 던져봐야 한다. 우주란 지구 밖이라고 인간이 정해놓은 것일 뿐 애당초 우주는 지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 지구자체도 우주의 일부분이며, 인간... 모든 것이 우주의 작은 일부다. 단지 학술을 위해 지구를 기준으로 분리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다. 따라서 우주의 기운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지어낸 이야기에 불가하며, 좋은 기운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기운은 파장이다. 긍정적인 파장이다. 그렇듯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서 우주의 기운이 발생하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은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나약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마인드 컨트롤, 생각(마음)을 조절...
우리들에게는 긍정적인 힘과 부정적인 힘 이렇게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힘보다 부정적인 힘이 훨씬 빠르게 흡수가 된다. 현재 경제란 이름아래 마음을 다스리기보다 물질만능을 신봉하는데서 더욱 그렇다. 행복지수가 높을 때 시대를 살펴봐라, 8,90년 대, 그 때는 90%정도가 가난했다. 하루 세끼니 걱정하면서 살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로 비교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정보다. 뉴스와 학교 조기 경제학을 가르치는데서 존재한다. 또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마을을 찾아가서 확인해봐라, 경제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전에 서프라즈란 tv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있다. 도시와 현대 문명 경제와 담을 쌓고 살아왔던 소수민족, 그들은 200살까지 살았으며, 기본 120에서 15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80세에도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물질, 경제가 그 소수민족에게 파고 들어가면서 경제론에 의해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가게 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장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경제학은 악마의 학이 틀림없다.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로 여행을 가지 못하더라도 다큐를 찾아서 봐라. 그들은 경제와 멀리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사회생활하면서 지옥처럼 느끼게 된 원인은 경제에서 발생하며, 경제에서 서로 비교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누군가와의 비교, 누구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먹는데, 나는 겨우 밥에 김치쪼가리 뿐이라는 생각에서 자신을 끝임 없이 나락으로 끌어내리게 만들게 된다. 그러면서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가게 되면서 끝내 자살이나, 묻지 마 범죄까지 연결시키는 연결고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처럼 애당초 비교하지도 말아야 하며, 사실, 외국 개발도상국 빈민가에선 하루에 한 끼니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들의 비하면 김치라도 세 끼 먹고 있다는 점에서 신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 긍정적인 기운을 만들어낼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경제란 이름아래 경제에 노출되는 순간 긍정적인 힘보다 부정적인 힘이 훨씬 강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물질만능을 신봉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렇듯 돈만을 좇는데서 여유가 사라지고, 그렇게 한순간에 돈이 사라질 때 하늘이 무너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 돈이란 사회를 편리하게 운영하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의 불가한데 말이다.
 
그럼 왜 긍정적인 마인드보다 부정적인 마인드가 큰 걸까란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주변 비교와 말이다. 말에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직접적으로 마음에 닿기 때문이다. 그 예로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한다. 점을 봤다. 그런데 점괴가 안 좋다. 그러면 점을 본 자신은 그 점괴를 잊으려고 노력한다. 아니면 대비를 한다. 그렇게 의식하게 되면서 어떤 작은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럼 그는 점괴와 일치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좋은 점괴는 어떨까? 금방 잊어버리며, 거의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 차이는 어디서 찾아올까? 그렇다 인식차이다.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 생각을 불안한 요소에 포커스를 맞추고 컨트롤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작은 불행이 현실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 정신적 파장이 우리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과 같다.
 
흑주술사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의 불안요소를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흑주술을 걸어도 그 상대가 그것을 모를 때 신경 쓰지 않을 때 흑주술은 걸리지 않는다. 또한, 주술을 걸어서 치유하는 효과 역시 그렇다. 믿음이다. 강력하게 믿을 때 일어나는 기적이다. 그렇듯 죽을병도 자신을 강하게 믿을 때 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나타나게 되며, 가끔 종교시설에서 기적이 나타나는 원인도 이와 같다. 강한 의지와 믿음에서 정신적 파장이 기적을 일으키게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죽는다고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꾸준하게 될 때 그는 정말 병에 걸려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자살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말이다. 부정적인 말을 들을 때 그 부정적인 말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부정적인 파장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현실에서 일어나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탐욕이 크면 클수록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탐욕에서 상대와 비교하게 되면서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열게 된다.
 
그렇듯 나는 안 돼, 무엇을 해도. 힘들다, 힘들다. 입에 달고 살 때 정말 삶이 힘들고 지옥같이 느껴지게 된다. 사실 말 자체에는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말로 인하여 인식하게 되면서 심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놓게 된다. 인간의 내면은 유리보다 더 약하다. 그러므로 충분히 말한 마디로 부정적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그 대표적으로 말 한 마디로 살인사건도 일어나다는 점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말과 생각을 주입할 때 현재 하루에 한 끼니를 먹고, 단벌이라도 행복할 수가 있게 되며, 천국이 따로 없게 되며,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그렇듯 꾸준히 자기암시를 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최고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나는 강하다. , 긍정적인 단어를 만들어놓고 아침저녁 일어나고 잘 때 주문을 외우듯 소리 내서 읽어주기만 해도 그 영향은 발생하게 된다. 10일만 꾸준히 소리 내어 암기해봐라. 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이 듣게 되면서 뇌에 한 번 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 정말 얼마가지 않아 자신에게 생기가 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자기 최면 마인드 컨트롤이다.
사실 그렇지 아니한가? , 명예, 권력은 죽을 때 짊어지고 갈 수 없지 아니한가? 오히려 부, 명예, 권력이 아까워서 제대로 눈을 갚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한다.
그렇듯 과한 욕심, 탐욕은 스스로 자신만의 작은 감옥을 만들어놓는 것과 같다. 또한, 일을 시킬 때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대할 때 상대는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너는 못해, 너는 그것도 못하나, 너는 왜 그래. 이런 부정적인 말을 자주할 때 상대는 의기소침, 부정적인 마인드가 만들어지면서 자신이 잘 했던 일들도 못하게 되며, 스스로 나는 왜 이럴까란 물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서 끝내 작고 어두운 감옥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그처럼 서로 경려하고 긍정적인 말을 자주하여 현재 시간을 아름답게 꾸며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은 돈을 신봉함에 상대를 칭찬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상대에게 칭찬하지 않으면 상대 역시 당신에게 칭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인드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 칭찬하고 긍정적으로 대할 때 필히 그 긍정적인 마인드는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음을 강하게 키우는 방식은 마인드컨트롤 자아 사상을 키우는데서 존재한다.
마인드컨트롤은 자신의 생각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믿음이다. 자신의 삶에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현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반대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침에 사라지는 이슬처럼 신뢰하지 못할 경우엔 언제나 아침이 되면 이슬이 사라지듯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가게 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서 삶의 불확실성이 되며, 불확실성에서 불안해지며, 불안은 우울하게 만든다.
자신을 굳게 믿는데서 상대방도 믿게 된다. 상대를 믿음에 상대 역시 당신을 믿어주게 된다. 약간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를 믿음에 있어 그렇다. 자기 이득만을 계산할 때 상대 역시 자기 이득만을 계산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근처에 믿음을 서로 공유할 상대가 사라지게 된다. 우리인간들은 생각보다 훨씬 나약한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친구, 지인 한두 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차이는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작은 손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먼저 마음을 줬다고 상대가 그 마음을 가지고 장난 칠 것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잘 났다고 생각하지마라. 내가 잘 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당신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자기자랑과 자기사랑은 다르다. 상대를 배려할 때 상대도 자신에게 배려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렇다. 경제학에 빠져 부와 명예 권력에 빠진 사람들은 배려에 대해 모른다. 그렇듯 자신에게 배려하면 얕잡아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신들이 잘 나서 배려하는 줄 착각하는 경향이 점점 높아졌다. 그러므로 그들 곁에는 진정한 사람이 존재할 수가 없게 되므로 노후, 힘들 때 비로써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듯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남에서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려는 데서 배반배신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울증은 심리 정신적으로 볼 때 악마와 같다. 자신의 심리 정신을 좀 먹어버린다. 그렇게 스스로 나락으로 이끌러간다. 그렇다면 우울증 정신적 악마와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믿음이다. 종교에서 믿음을 강조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그처럼 믿음은 사용하기 따라 아주 위대하며, 위험하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사이비종교 자살사건, 이들은 죽음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일본 가재가미란 자살비행도 그랬다. 현재 일왕, 그 당신 천왕 즉, 신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신의 뜻을 따를 때 죽음에서 영생,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굳게 믿는데서 죽음자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듯 믿음에 있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 따라 위대한 선물이 되어주기도, 악마가 되기도 한다.
우울한 감정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살면서 배신배반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쉽게 얘기하면 자신감이 사라짐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충만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이후에 설명함. 우울함, 우울증을 없애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데서 우울한 감정을 없앨 수 있다.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감이란 자신을 믿는데서 시작된다. 자신감이 사라질 때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조차 사라지게 된다. 왜 나만 이렇게 사는 걸까란 의문을 품게 되면서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열게 되면서 끝끝내 자살이란 선택의 문을 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처럼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은 우울증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자신감을 위해선 마인드 컨트롤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 나는 용감하다. 나는 위대하다. 나는 최고다. 나는 모든 사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주변을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그 칭찬을 되돌려 받을 수가 있을 테니까. 칭찬을 들을 때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듯 자녀에게 공부를 못하더라도 괜찮다. 너는 할 수 있어. 잘한다라고 주문을 외우듯 자녀에게 칭찬을 해줄 때 자녀는 자신이 정말 잘 하는 줄 착각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어느 시점에서 성적이 오르게 된다. 이게 세뇌효과다. 또한 자기암시, 자기최면은 현재 우리들의 삶에서 필요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최고다. 나는 모든 사물을 사랑한다. 모든 사물은 나를 사랑한다. 나는 축복을 받았다. 등등....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만약 자신에게 누군가가 배신, 사기를 쳤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친한 지인에게 천만 원을 빌려줬는데 그는 그 돈을 갚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가정해보자. 천만 원이란 돈에 고통과 배신당한 상처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운이 좋아 지인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을 경우는 제로에 가깝다. 그러므로 내려놓아야 한다. 그게 최선의 방책이다. 운이 좋으면 몇 년이 지나서 돈을 갚으려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 커다란 돈인데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겠느냐구 반문을 던질 것이다. 그런 아쉬움, 억울함에 자신의 현재의 삶을 지옥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모른다. 스스로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돈 거래는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빌러줘야 하는 경우엔 여윳돈에서 빌러줘야 한다.
 
미련을 가지돼 집착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인드컨트롤은 긍정적인 생각을 원칙으로 삼고, 주변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데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면서 어떤 작은 미련도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미련이 현재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집착하는 순간 스스로 만들어낸 집착이란 창살 없는 방안에 자신의 감정에 가둬놓는 것과 같다. 물론, 집착에서 연구결과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는 집착이 심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된다. 집착이란 풀리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착이 클 때 큰 만큼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에서 삶의 여유가 생기게 되며, 그럼 산다는 게 큰 축복이 되어줄 것이다.
첫 번째 자신을 굳게 믿어야 한다. 자신을 믿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현 삶을 행복과 축복의 길로 이끌어간다.
두 번째 자신을 믿고 세상을 믿을 때 세상은 당신에게 어떤 작은 배신도 하지 않는다.
번째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지, 주변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 것이, 현재 자신에게 당당해져야 한다.
 
나는 40이 될 때 깨달은 것은 허무였다. (비울 허) (없을 무) 모든 것을 비우는데서 삶의 진리라는 것을....그처럼 현재 자신을 삶을 옭매는 이유는 집착과 비우지 못하는 욕심, 욕망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힘들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성에서 나온다.
너와 나 그리고 주변을 인식하는데서 나는 왜 저들보다 못하는 걸까? 저들은 저렇게 호화스럽게 살아가는데. 나는 하루하루 먹기도 힘든 거지란 스스로 비교하는데서 발생한다. 애당초 비교할 너와 그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비교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자신이 무능하다고 판단할 기준이 사라지므로 고통을 받을 일이 없어진다. 그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제학에 의해 주변과 자신, 나와 너를 수도 없이 비교하면서 현재 스스로 암흑의 문을 열어버린 결과가 아닐까한다. 또 우리나라는 왜 참견, 오지랖들이 그리도 심한지 모른다. 부모는 누구누구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너는 컴퓨터나하는 거니. 혀를 쯧쯧..
누구누구는 공부도 잘하는데 너는 누굴 닮아서 그러는 거니. 등등 수많은 비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 없이 나오는 비교는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다. 자신감을 죽이는 행위가 된다. 오히려 칭찬을 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를 믿어. 그래 조금 천천히 가자. 등등 최대한 긍정적인 말과 칭찬할 때 용기를 얻어 당당하게 방구석에서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처럼 믿음이 중요하며, 칭찬을 경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상처를 입었다고 사람을 피하지 말 것이며, 우울하다고 집안에 틀어박히지 말 것이며, 힘들다고 기죽지 말 것이며, 아프다고 회피하지 말 것이며, 자신의 외모가 추하다고 피하지 말 것이며, 자신이 잘 났다고 착각하지 말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는 소홀히 하말 것이, 배려를 몸에 배궤해야 한다. 그럼 돌고 도는 인생사에서 자신이 풀어놓은 덕만큼 삶에서 어떻게든 되돌아올 것이다.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단지 자신이 모를 뿐 삶은 돌고 도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지구가 돌듯이 말이다.
 
우울한 감정은 그런 것이다.
나약해진 감정이란 잘 익은 과일에 악마의 작은 벌레가 파고들어오는 것과 같다. 악마의 작은 벌레는 야금야금 잘 익은 당신의 하트 마음 정신을 갉아먹어 치워버린다.
자신이 금전적으로 힘들다고 생각이 들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다고 느껴진다면 다큐를 찾아봐라. 살기위해서 노력하는 그들을.... 그럼 현재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보이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사람이 무섭다고 방안에 틀어박히지 마라. 그럼 당신은 두 번 패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더욱 화려하게 꾸미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우리 인간들의 정신세계는 생각보다 아주 미약하다. 그러므로 절대 혼자 살 수 없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로운, 고독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극한 고독에서 철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힘들 때면 이렇게 자기최면을 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신의 테스트라고, 테스트가 끝나면 천국의 문이 열릴 거라고, 물론 신, 천국과 지옥,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나오는 판타지 모든 것이 존재한다. , 이것은 정신세계와 연결되었으며, 파장에 일부분란 것이다. 보고 느끼는 것은 파장에 의한 것이다. 꿈을 예시로 들어보면 쉽다. 꿈속에서도 보고 느낀다. 단지 감촉이란 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또한, 몽정기 등에서 실제로 몸도 반응한다. 그렇듯 이 모든 것은 2차원과 3차원사이에 존재하는 양면우주과 서로 맞닿는 부분에 존재한다.
참고 푸앵카레의 추측 달리 풀다(이후 시간을 내서 제대로 수정 보안할 예정이다)
우울하다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 사람들은 모두 같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무서워하면 상대도 무서워한다. 단지 허풍의 차이일 뿐이다.
 
 
 
 
십여 년 전에 생각(썼던 글)을 모티브로 다시금 급하게 쓰느라 잘 써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어지는 듯하네.
 
도심(道心)
마음의 길, 스스로 마음을 운전하기에 따라 악운도 행운이 될 수 있고, 행운도 불행이 될 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은 신도 운도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강하게 믿어야 한다.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데서 불행은 스치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었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부정적인 경우 어떻겠는가?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온 거야. 왜 나만이란 생각을 하는 순간 불행은 좀처럼 자신의 등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행운이 찾아와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 행운도 불행처럼 느끼게 되며, 그 순간 불행이 되어버리다. , 마음가짐에 따라서 얼마든지 현재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잘 다듬는데서 현재 삶을 얼마든지 행복하게 가꿀 수 있다. 이것은 부와 명예 권력, 신앙도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존재하는 고유의 치유능력이다. 이런 능력 때문에 기적이란 것이 가끔 일어나게 된다. 걷지 못하던 사람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걷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신경이 죽어 걷지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신경은 전자회로라고 가정해보자. 전자회로에 전류가 흐르는 선(신경)이 끊어졌을 때 전류는 흐르지 않게 된다. 즉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주 강렬한 전류를 흘려보낼 때 강한 전류는 끊어진 신경부분을 뛰어넘어 연결되기도 한다. 쉽게 현재 충전기를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폰에 다가 직접 선을 연결하지 않고, 핸드폰을 가져다 놓기만 해도 자동으로 충전된다. 이처럼 강한 전력인 스피릿이 강할 때 스마트 무선충전기처럼 끊어진 신경에 전류가 흐르게 되면서 휠체어서 일어나 걸을 수가 있게 된다. 여기서 전류란 강한 의지와 강한 믿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듯 스피릿을 끄집어낼 매개체가 필요하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을 한 번 살펴보자. 신앙이다. 종교란 매개체에서 믿음을 강하게 끄집어낸다.
그래서 나는 종교 신앙을 믿을 거라면 깊이 믿으라고 조언한다. , 그 종교를 관리하는 자들도 사람이니, 그들 역시 욕망과 욕정을 가지고 있으므로 조심하라고 조언할 뿐이다. 이왕 종교 신앙을 믿을 거라면 사람이 아닌 순수한 신앙만 믿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비운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비우지 못한다. 이 얘기는 사람을 신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끔 종교에서 말썽이 일어나는 이유는 종교자체가 아니라 그 종교를 관리하는 자들의 욕정, 욕망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적과 환상환각의 차이.
기적과 환상환각의 차이는 모두 정신적인 문제이며, 강한 스피릿에서 발생한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당신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 당신이 귀신이 나오는 흉가로 간다고 해서 귀신을 볼 확률은 3%미만이다. 3%인 경우는 혹시 하는 의문에서 만들어진다.
반대로 귀신을 믿는 자가 귀신이 나오지 않는 흉가만 가도 귀신을 볼 확률은 50%가 된다.
그럼 왜 우리들은 신보다 귀신을 쉽게 볼 수 있는 걸까란 물음을 한 번 던져봐야 한다. 정보다. 귀신인 경우, 입으로 이야기로 전해지고, 영화, 이미지 등 끝없이 전달된다. 그러나 신의 이미지는 어떤가? 신의 이미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신에 대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귀신을 보듯 신을 영접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미지가 존재해야 꿈에서든 환각으로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자체가 불확실하므로 신을 영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신을 영접하였다고 하는 자들 역시 신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 자신의 감정, 자신이 신이라고 믿는 것일 뿐이다.
또한, 신앙에 기본은 묻지 마 믿음이다. 믿음을 강요하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말로 신념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의 모든 기본은 정신에서 나온다. 정신, 신경은 파장이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신 이 모든 것은 파장 정신세계로 볼 때 하나의 꿈과 같은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종교에서 툭하면 얘기하는 것이 죽은 뒤에 천국을 논한다. 그들도 이미 현실에서 신과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꿈을 예시로 들어보자. 꿈속에서 악몽을 꾸게 될 때 3차원 현실에서 몸이 반응한다. 몽정도 그렇다. 그러면 꿈은 무엇인가? 뇌의 강력한 파장이라고 한다. 꿈속에서도 모든 것을 느낀다는 점이다. , 영혼은 꿈을 꾸듯 파장덩어리다. 꿈은 파장이므로 영혼과 꿈은 연결되었다. 우리들이 죽는 순간 파장덩어리가 빠져나오게 되며, 파장덩어리는 양면우주가 만나는 지점에 모이게 되며, 이곳에서 꿈속에서 봤던 모든 것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신, 천국, 지옥, 그리고 영화, 애니메이션 판타지도 존재하게 된다.
또한, 꿈속에서 3차원 현실에서 존재하는 물리는 존재하지 않듯 영혼세계에서도 물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사실 죽은 뒤 영혼이 지옥으로 향하고, 불구덩이에 빠진다고 한들 몸뚱이가 없는데 뜨거운지 타는지 모른다. 그러나 감정으로 느끼게 된다. 꿈에서 악몽을 꾸듯이 말이다. 그처럼 꿈은 우리들이 죽은 뒤 영혼이 갈 곳을 미리 알려주는 통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예쁜 꿈, 아름다운 꿈을 꾸기 위해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편안한 꿈을 꾸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가 머릿속에 남아 자신을 괴롭힐 때 그 영향으로 악몽을 꾸게 된다.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단순한 게 아니다.
 
 
 
동전과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컨트롤에 진정한 힘은 자신의 감정에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연인이 있다. 연인은 키스를 하기 위해 서로 입과 입을 접촉한다. 그리고 혓바닥이 서로상대방 입안으로 스멀스멀 들어간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입 안 가득 침액들을 서로 교환한다. 그러면서 연인들은 그 행위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음식물에다가 침을 퉤 뱉어놓는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음식물이 더럽다며 화를 낸다. , 여기서 우리들이 뇌와 마인드컨트롤을 살펴봐야 한다. 키스할 때에 그 많은 침액을 서로 교환할 때엔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이 음식물에 침이 약간만 튀어도 더럽다고 생각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를. 그렇듯 사람의 생각, 무의식에 보이는 생각을 컨트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꿔놓으면 흙탕물이라도 맛있게 마실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자신의 사상(생각)을 가꾸는데서 시작되고, 그 사상(생각)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놓는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슬픔과 고통, 아픔, 외로움 등등 수많은 불행이 존재하고 그 불행에서 우리는 왜? 내게 만이란 물음을 던지며, 자신의 현재를 비판하면서 더욱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해지곤 한다, ? 남과 비교하고 자신을 학대하는지. 그것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가장 어리석은 동물들이며, 가장 탐욕으로 가득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탐욕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현재 자신의 탐욕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는지 알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가랑비에 옷 젖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현재 자신의 사상이 썩어 곯아버렸기 때문이다. 경제학 경쟁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성지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믿는데서 만들어진 거짓 사상(생각) 때문이다. 지옥과 천국은 사상(생각)에 따라 바뀐다.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다스리고 그곳에 꽃을 심어놓고 정성껏 키우면 그곳은 꽃밭이 되며, 더 나아가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지옥이 아닌 천국이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천국에 있어도 경쟁과 경제학으로 만들어낸 거짓 사상에 서로 의심하고 상대방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가기 위해 상대방을 비방하고 상대를 짓밟으려는 데서 현재 지옥이 되는 것이다.
생각, 마음, 사상을 아주 조금만 고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만 갖게 된다면 현재 삶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일에 용기를 얻기 위해 이런 방식을 선택한다. 주머니 속에 동전 한 닢을 들고 다니며, 어떤 일이 생기면 동전을 꺼내놓고 동전을 던져본다. 사실 인간들에게 누구나 마음속 깊숙이 행운의 동전 한 닢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단지 우리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 행운의 동전 주인이 바로 자신이란 사실을...
 
우리들의 운은 너무나도 거창하고 거대한 미스터리로 완성되고, 그 운을 얻기 위해 수많은 고통과 고뇌가 뒤따라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도전에 있어서 언제나 미숙하며,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못하고 매일 같이 속만 태우며 살아가면서 자신의 자아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행운이란 그 행운을 억지로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다보면 행운은 좀 더 멀리 도망치는 것만 같다. 그렇듯 너무 많은 계산하고 행운의 동전을 꺼내면 행운은 이미 멀리 도망친 뒤다. 뒷북을 친다고 한다. 가끔 우리들에겐 단순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야 성공이든 실패든 그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 찾아온다. 어떤 도전도 없이는 새로운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좀 더 쉽게 얘기를 풀어놓는다면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 그런데 자신은 그 상대에게 용기를 낼까 말까 고민을 하다보면 버스가 오고 버스가 출발한 뒤에 자신은 닭 쫓던 개처럼 버스만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그렇듯 우리들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은 행운의 동전을 꺼내어 던져야 한다. 그래야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들어난다. 성공하듯 실패하듯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아주단순하다. 인생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애인이 있을 거라며 싫다고 딱지를 맞을 거라고 미리 계산하고 행운의 동전을 꺼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행운의 동전은 영원히 마음속 깊숙이 잠들어버린다. 그러면서 내게 운이 없다고 얘기하는 자처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막말로 딱지를 맞는다고 해도 순간 몇 분의 무안일 뿐이다. 그러나 대시도 못한 아쉬움에 밤새 잠을 이루지도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도전에서든 두려워하면 절대로 행운의 동전은 존재하지 않으며, 행운 역시도 언제나 자신만을 외면한다. 행운이란 자신의 긍정적인 사상으로 만들어내는 도전이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도 나온 것이다. 도전 없이는 어떤 것도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제일 뿐, 연습일 뿐이다. 그러므로 고민은 그만하고 자신의 행운의 동전을 높이 던져봐라. 그럼 어떤 결과든 자신 앞에 명확하게 들어나게 될 것이다.
 
비교
도심(道心) 마음의 길, 마음 따라 자신의 행복과 불행이 바뀐다. 우리들의 현재 자신의 道心을 천천히 되돌아봐라 남과 비교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를 그러면서 현재 자신의 삶을 평가하지는 않는지? 삶 비교 점에 따라 현재 자신의 삶의 눈높이가 달라진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나 동물과 비교하면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욕망에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보다 자신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려는 데서 자신의 현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그렇게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과거 7,80년대만 해도 우리들은 가난하여 하루끼니만 챙겨먹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급성장으로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나누게 되면서 우리들에게 수많은 惡 思想이 생겨났다. 그로인하여 물질만능이 급진전되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성공과 물질만능주의로 세뇌되어가면서 만들어진 경제학에서 만들어진 惡 思想4()D사상이 만들어졌다. 학벌, 인맥(연고지), 관행, 물질만능주의가 대표적인 惡 思想이다. 이런 사상은 성공의 지름길이란 공식이 만들어졌다. 또한 현재 그렇다. 개천에서 용이 탄생한다는 말은 과거 옛말이 되었다. 능력은 필요 없이. 성공이란 목표에서 양심을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 따기처럼 힘들다. 이런 사상 속에서 과연 얼마나 행복할 수가 있는지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현 교육에서 따뜻한 정을 가르치기보다 4D사상을 강요하고 가르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줄을 잘 서기 위해 학벌의 중요하다며 매일같이 공부 공부를 외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기본을 백으로 기준 잡아 99%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되어있다. 특별한 사람들은 1%미만이며,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작 10% 안팎이다. 우리들처럼 보통 사람들이 10%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들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힘들다. 아무래도 타고난 행운이란 것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들은 그걸 신의 은총이 함께해야 한다고도 한다. 신이란 무엇일까?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정신적 지주다. 그렇다면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은 마음, 정신이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믿는 것이 진정한 신을 믿는 것과 같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마음에서 시작하고 마음에서 끝난다. 불교에선 행운을 타고 나기 위해선 전생에 선행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한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최악의 삶으로 떨어진다는 종교에 가르침도 있다. 그렇듯 행운을 타고난 사람은 뭘 해도 손쉽게 풀리고 행운이 없는 사람은 뭘 해도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행운이 없다고 해서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절대 없다. 다만 道心을 사용해야 한다. 자신의 목표점을 낮게 잡고 행복을 찾을 때 작은 발전에서도 큰 행복과 축복이 뒤따라온다.
자신의 능력 값은 6인데 7을 원한다면 -1이 따라오게 되면 -1만큼 고통이 찾아온다. 그렇게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욕심이다. 즉 욕심만 조금만 내려놔도 지금의 삶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들은 자살을 욱해서 한다고 착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내적으로 갈등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버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에서 만들어진 갈등이다. 자신의 삶과 상대의 삶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삶이 +4라고 할 때 그가 보는 삶은 +6이상을 보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다. 애당초 한 단계 낮추어 +3을 보고 자신을 비교했다면 그는 자살충동 삶이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한 단계씩 천천히 올라가면서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
 
수행자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 식량이 부족한 시기, 배고픔에 힘들었던 시절 과거 백 년 전, 그들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단식이란 수행을 했고, 단식이 끝나고 물 한 목금에 행복감을 느꼈다. 또한 자갈밭에 앉았다가 바위에 앉을 때 바위가 편안하게 느낀다. 그렇듯 수행은 자신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과 함께 현재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함이. 이처럼 현재 자신의 삶을 한 단계만 낮추어 볼 때 현재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느끼게 해준다.
반대로 귀공자로 태어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생활을 하다가 딱딱한 잠자리와 음식이 야채로 변했을 때엔 그들은 그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진정한 사상과 수행으로 깨달음은 물 한 모금에도 만족하고 풀 한 포기일지라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원리다. 현재 인간들은 높은 곳에 있으면 더욱 높은 곳에 있고 싶다는 탐욕과 욕망으로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물질만능주위 욕구와 탐욕을 버리기만 해도 현재 삶에 행복지수를 올릴 수 있다.
 
인생
인생이란 자체는 참으로 신기하고 엽기적이다.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고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어떤 이에게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우리들이 모르는 곳에서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다. 또한 당신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결과물만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그릇이다. 그렇듯 자신의 그릇에 욕심으로 가득 채운다고 하더라도 넘치며 흐르게 마련이다. 인생은 순리대로 즐기며 살다보면 언젠간 자신에게도 좋은 날이 찾아온다. 긍정과 믿음만이 자신의 현재 행복과 미래의 행복을 찾는 최선의 방책이다.
 
*어린 시절 꿈은 자신의 젊음을 위한 것이라면, 노후의 꿈은 사후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꿈은 성장시키는 원동력 목표가 되어준다. 그처럼 꿈이란 목표가 존재할 때 그 꿈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공부를 하게 된다. 공부를 가르치기보다 꿈 목표를 만들어줄 때 젊음은 행복해진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면 주변을 살피고 주변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죽음 앞에서 양심이란 마음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죽는 순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우리들이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욕심, 욕망, 걱정, 후회 등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처럼 삶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후의 꿈은 사후를 위해서 꿔야 하며,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죽기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를 향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욕망을 적게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현재의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반대로 욕망이 높으면 높을수록 현재의 행복지수는 낮아진다. 이것은 삶의 공식이며 진리다.
-욕망이 적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삶을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삶보다 한단계위를 보고 사는 경향이 높다. 그렇게 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자신의 불신이 만들어진다. 남은 저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나는 저들보다 못한 거지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싫다면 현재 자신을 보고 자신의 그릇을 찾는 게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 ‘니 자신을 알아라.’ 손자병법,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처럼 자신의 그릇을 가늠하지 못하고 남의 그릇이 크다고 자신의 그릇을 남의 그릇에 맞추려는 데서 마이너스가 존재한다. 인생에 있어서 마이너스만큼 자신에게 큰 고통과 시련으로 다가온다.
물론 꿈에 시발점에서 그릇이 크면 클수록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을 현실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은 고통과 아픔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그릇을 채운다는 보장도 없다. 복을 타고난 사람은 예외다. 아니 인생의 그릇 자체가 복일지도 모른다. 누가 얘기했던가? 신은 공평하다고 그러나 그런 얘기한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공평하게 느껴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는 의기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욕망을 작게 잡고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는 것이 매우 현명한 방법이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꿈을 크게 잡고 계단을 두세 계단씩 한 번에 뛰어 오르다간 엄청난 고통과 고난에 중도 추락하는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무한경쟁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하나를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하여 목표에 쏟아 붓는 열정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현재 무한경쟁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적은 자신의 능력과 사상이며, 자신의 일에 있어서 대충이란 생각은 금물이다. 대충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능력이 표적이 되고, 전쟁터에서 표적이 되면 그 표적은 가차 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듯 전쟁터에선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기위해선 끝없는 자기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에게 무한능력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자신만이 가장 뛰어난 것을 찾아 그 능력을 보완하고 개발하여 월등한 능력으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소총이 아닌 미사일이 되어야 한다.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은 각기 다르다.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운동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있고,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글을 읽는 것을 즐기는 평론가들도 있다.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자신이 타고난 가능성이 높다.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
 
*자신은 누구나 어느 정도까지는 특별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도가 지나칠 경우에 미래는 그리 밝지만 않는 법이다.
-자신이 특별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출발선에서나 삶에 있어서 자신에게 어느 정도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특별나다는 증거이다. 그처럼 너무 과장될 때 남들에게 표적이 된다. 현재 아무리 잘나갈지라도 한순간의 젊음과 같은 매력적인 유혹일 뿐이다. 젊음이 있다면 노후가 있는 법이며, 현재가 있다면 사후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유를 갖고 주변을 잘 살피며 덕을 쌓는 게 중요하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짧게 느끼고 불행은 누구에게나 지나치게 길게 느낀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똑같은 비례로 이루어졌다. 단지 우리들이 느낌에 있어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노력한 행복은 언제나 자신의 근처에서 맴돌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찾아가서 관찰할 때에 비로써 느낀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에게 불행이 그렇게 자주 찾아오고 길게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아주 단순한 원리다. 자신이 기다리지 않는데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될 때 그 일이 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일지라도 두 시간을 넘겨도 좀처럼 마감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누구나 한두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일 경우엔 어떤가? 한 시간 걸릴 일을 30분에도 끝내기도 한다. 그처럼 자신의 감정에서 느끼고 판단을 먼저하고 있다. 기다림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찾을 수가 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운명은 빛나는 섬광이다.
-생각을 해봐라 죽음이 없다면 탄생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며, 인생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죽음을 위해 달려가고 있기에 지금 이 한순간마저도 놓쳐서는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이 된다. 그로인하여 행복, 기쁨, 슬픈, 고통이 공존하게 되며, 가족, 가정, 친구,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죽음이 없었다면 탄생도 가족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의 한 시간을 남보다 더 귀중하게 아끼고 계획하고 죽음을 위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죽음 앞에서도 떳떳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
 
*인생은 기록이며 기록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인생의 참맛을 느끼지 못한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이 자체는 역사다 역사책의 기록되어야 만이 역사가 아니다. 자신의 인생사에서 자신의 기록장에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 어떤 발전도 성공도 기쁨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기록장을 차곡차곡 채우기 위해 그날의 뜻 깊은 일을 계획하게 되고 목표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기록을 뒷전에 있다면 하루에 목표가 사라지게 되므로 자신의 삶 또한 사라지게 된다. 축복이란 그런 것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목표를 달성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다. 목표를 잡을 때에 일 년을 잡고 일 년을 열두 달로 나누어 잡고 한 달을 일주일로 나누어 잡고 일주일을 하루하루 나누어 잡고. 시간낭비 최소할 때에 최고의 삶을 선물을 받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꿈꾸는 그 미래일 것이다.
 
*도전하는 자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낭만적이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살아있는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실패를 거듭하였다고 포기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절망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지도 모르게 만든다. 심지어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이 살아가야할 힘을 잃어버리고 끝내 우울증이란 악마의 사슬에 묶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듯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지 말아야 한다. 작게 잡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앞으로 아기가 발을 떼듯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실패 하더라도 그 실패는 다음에 찾아올 도전에 있어서는 더할 나이 없는 좋은 스승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젊음이여 지금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 나약해졌다는 증거다.
 
*꿈을 알맞게 자신에게 맞추어 잡아라. 그러면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꿈이 크면 클수록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척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꿈을 알맞게 잡으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 인생의 여유를 즐기며 살아갈 수가 있다. 인생의 여유 없이는 그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늙음 앞에서 한낱 부질없는 젊음을 불태워버린 삶이다. 그렇듯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근처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아주 소소한 가족부터다.
 
*꿈을 꾸는 것만큼 그 어떤 큰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와 명예가 있다고 한들 꿈이 없다면 그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 죽음 앞에선 단순한 꿈보다 못한 부와 명예일 뿐이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신의 작은 목표일지라도 그것을 도전하고 그것을 성취할 때이다. 꿈은 죽음이 다가와도 하나의 목표로 바뀐다. 그렇듯 부,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도 꿈을 꾸는 사람이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인생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비극이며, 즐기려는 사람에게 축복이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얘기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보기 좋은 그림보다 못하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욕망에 사로잡혀 살다보면 작은 행복을 감지할 능력이 잃어버리게 되면서 인생이 지루하고, 짜증나고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는 원인이다. 여유를 갖고 인생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어떤 작은 불행이 찾아와도 다음에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믿어, 불행자체도 즐기는 법이다.
 
 
 
 
*아무리 힘이 넘치는 뱀장어일지라도 흐르는 강물을 흙탕물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시간의 흐름에서 노환을 막을 수 없다. 의학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잠시 신체만 조금 늦출 뿐이지 세포 장기들은 노화는 늦추지 못한다. 되고 있다. 겉으로만 건강하다고 속까지 건강할 수가 없다. 그렇듯 부와 명예를 다가졌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서 한낱 뒷방신세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권력도 강압도 아닌 세월이다. 노환에 독고(獨孤)로 살고 싶지 않다면 현재 젊었을 때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노환으로 뒷방으로 밀러나가더라도 사람들은 당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 외로움을 달래줄 말동무가 되어준다. 가끔 자신만은 절대 젊음에서 밀리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 앞에서 가장 초라해지는 법이다. 젊음이여 여러분들의 젊음도 한낱 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를 논하다. 일본 전범자의 후예.
 
원래 포스팅은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서 수호신을 만들어야 한다에서 핫한 일본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 급하게 정리해봤습니다.
 
극우 좌파는 전범자들의 후예다. 대표적으로 아베 일본 총리를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정치를 할 때 상대의 심리도 알아야 한다.
 
1. 일본 정부는 왜 과거사에서 사과를 하지 못하는 걸까?
자신들이 과거사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조상들이 전범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전범자란 것을 감추기 위해서 국정농단이 일어나는 것이다.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치는 이유다. 그러는 그들에게 과거사를 청산 사과하라고 할 때 그들은 예 알겠습니다. 우리들 조상이 전범자들입니다라고 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럴 양심, 죄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자들이라면 교과서를 왜곡자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범 집안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정치 생활도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를 지키기 위해선 역사를 왜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그럼 왜 독일은 전범자를 처벌하는데 일본은 전범자를 살려주고 거기에 아직까지 권력을 탐하게 하는 걸까란 의문이 생긴다.
미국의 영향이다.
 
3. 그럼 왜 미국은 일본 전범자들에게 죗값을 물을 수가 없었던 건?
그 당시 미국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부모를 죽인 원수처럼 싸우지 않다면 일본 전범자들은 모두 사형을 처해졌을 것이다. 그럼 지금의 일왕도 아베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일본 전범자들을 처리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하인으로 남겨두는 것이 미국에게 커다란 이득이었다. 일본이 자신들의 편일 때 아시아를 관리 전복할 수 있으니까. 또한, 소련과의 전면전에서도 일본을 기반으로 기지를 만들 수도 있고 여하튼, 일본 전범자들을 모두 처형했다면 일본은 미국이 아닌 소련으로 등을 돌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럼 미국과 소련의 전쟁에서 거꾸로 소련이 일본에다가 기지를 만들어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일본 전범자 놈들을 사형시키는 대신 미국 자신들의 하인으로 삼게 한 것이다. 그 대표적으로 일 천왕은 일왕으로 계급하락을 했다. 그리고 사형수들을 풀어주고 권력까지 쥐게 한 이유다. 살려주는 대신 자신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그렇기 때문에 아베는 미대통령과 만났을 때 똥마려운 강생이마냔 꼬리를 흔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일왕과 천왕의 차이는?
천왕은 말 그대로 하늘의 왕, 신을 뜻하며, 모든 권력과 모든 것을 통치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일왕인 경우 정치와 권력이 사라진 게 되며, 말 그대로 일본의 왕이 된다. 천왕은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스스로 권력과 정치를 포기하고 일왕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또한, 천왕일 때 일본인들은 정말 그가 신의 자식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천왕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 천국의문이 열린다고 굳게 믿어 가재가미란 자살비행을 했다. 그리고 오래전에 다큐를 통해 봤는데. 가재가미로 출전했던 노인의 증언, 자신들은 정말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일왕이 정말 신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리고 패전국이 되면서 천왕이 스스로 자신은 인간이라며 천왕자리를 내려올 때 그는 엄청난 배반과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5. 그럼 왜 미국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가가 부모를 죽인 원수보다 더 원수처럼 생각했는가?
미국과 유럽에선 자본주의 계급주의 귀족들이 우세했다. 그런데 소련에서 계급주의, 귀족들을 죽이고, 공산주의란 이념을 앞으로 내세우게 된다. 공산주의는 모두가 공편하게 나눠야 하며, 계급도 없는 평등한 사회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사상이다. 그 당시엔 평민, 가난한 사람들과 천민들 하인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은 단지 귀족을 위해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이념을 앞세웠을 때 어떻게 되겠는가? 소련 계급주의는 붕괴하고, 살기 위해 유럽으로 도망을 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목격한 유럽과 미국은 어떻겠는가? 또한, 이런 정보는 귀족들과 부유층들에게 빠르게 들어갔을 테고, 그런 위기에서 그들은 공산주의는 악마라고 국민들에게 선동 세뇌를 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에 서로 악마라고 선동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계급주의는 자신들의 재물과 명예 권력을 지키기 위해...
 
6. 그럼 공산주의는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 단 한 번이라도 존재하기는 했었을까?
단 한 순간도 공산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공산주의를 통괄하고 지도자 지배자가 존재하는 순간 공산주의 이념은 무너진 것이다. ,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위해 노예, 천민, 농부 가난한 국민을 선동했던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단 한 번도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와 같다. 모든 것을 나누고, 모두가 평등한 삶... 불가능하다. 인간은 욕심이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을 지도해야할 지도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가 존재하는 순간 이미 지도층이란 권력이 만들어지게 된다. 공산주의는 달콤한 말일 뿐이다. 따라서 공산당은 존재하지만 공산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7. 그럼 왜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를 부모를 죽인 원수보다 더 원수로 생각했는가?
소련에서 공산주의 이념이 일어났고, 귀족들은 살기위해 도망을 쳤다. 그러면서 정보는 유럽 귀족과 부유층들에게 빠르게 펴져 나갔을 것이다. , 정보가 어두운 국민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를 악마라고 정해 선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귀족들은 자신의 재산과 명예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8. 독일은 아직도 전범자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는 걸까?
여기도 미국이 끼여 있.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종족이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독일 나치시대에 유태인들 학살이 그 원인이다. 그럼 왜 독일인들은 유태인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유태인들은 고리업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제를 유태인들이 거의 집어삼키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고리대금업자라면 지금이나 그 당시에도 천민 중에 천민이 하는 일이며 주변사람들은 그런 고리대금업자를 싫어했다.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한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9. 유태인은 어떻게 해서 미국과 전 세계 경제를 주무르게 되었는가?
친구가 유태인에 대한 책을 읽고 내게 얘기해준 것이다. 유태인들이 2차 대전까지 왕권 금고지기를 도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유태인들이 금융업을 했다. 당시만 해도 금융업은 천민 중에서 천민 소돼지를 잡는 백정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금융일은 더러운 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그 당시에 생각했기에 유태인들이 금융을 독차지 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나자 숨겨놓은 왕권이 무너지게 되었고, 왕국에서 숨겨놓은 금은보화들을 금고지기들인 그들이 챙겨서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유태인들은 2차 대전부터 지금까지 미국경제 및 세계 경제를 주무르게 되었다.
 
10. 만약 중국이 소련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또한, 소련이 공산주의 이념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럼 일본 전범자들은 모두 사형을 다했을 것이다. 일본은 천왕에서 왕은 사라졌을 것이며, 그럼 지금 목에 힘을 주고 있는 아베 정부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극우 전범자 후예들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쪽팔려서 얼굴도 들지 못하여 어디 숨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일본 정권을 쥐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과거사 사과하라면 사과할 턱이 있겠는가? 과거사에 발끈하는 이유도 이런 곳에서 존재한다. 과거사, 역사 왜곡이 사라지기 위해선 일단, 전범자 후예가 아닌 자들이 정부를 맡아야 한다. 그럼 그들은 떳떳하게 과거사에 사과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 젊은 층을 공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전범자 후예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 젊은 학생들에게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nsnlgf 
 
 
*불멸의 시간은 과거다. 과거는 잊혀질 뿐, 그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후회 없어야 과거 또한 후회가 없다.
*정신건강은 사상으로 연결되고 사상은 현재의 삶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이 불행하고 슬프고 괴롭고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오는 이유는 그릇된 사상과 현재 경쟁사회로 만들어낸 잘못된 사상 때문이다.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의 사상을 봐라. 그럼 그 사람의 영혼까지 알 수가 있다.
현재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워 숨을 쉬지 못할 것만 같은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사상과 인생관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처럼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하고 긍정적인 사상을 배워야 한다.
그럼 현재의 자신의 불안이 사라지고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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